호기심 때문에 죽어간 5명의 해커들…

《마지막 해커》의 등장인물을 소개합니다.

 

강천규

24세의 남자로 천재적인 해킹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건의 발단이 되는 인물이다.

짧은 머리, 작은 눈, 항상 장난기 많은 미소를 지니고 있다. 기현의 절친한 친구로 컴퓨터 이외의 것은

모두 장난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신기현

뛰어난 해커는 아니지만 천규의 죽음에 의문을 갖고 [MURDER]라는 사이트에 접속하여 의문의

사건 속으로 빠져든다. 지애를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밝히지 못하는 24세의 남자.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눈썹을 살짝 가리는 생머리가 매력적이다.

 

최지애

많은 미스터리를 갖고 있는 여인으로 상당한 수준의 해킹 실력의 소유자다. 길고 고운 생머리에 미소가

아름답지만 의외로 냉정하고 차가운 면이 있다.

 

황규석 기자

사이코 같은 성향의 보도국 사건부 기자로 록 음악과 오토바이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마른 체형에 머리를 길게 기르고 다니며 옷차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언제나 이마를 두건으로 가리고 다닌다.

 

주민성 형사

많은 실적을 쌓아 최고의 수사관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화가 나면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가끔

피의자를 폭행하여 ‘폭력 경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근육질의 커다란 덩치와 솥뚜껑만한 손이 인상적이다.

 

김희선 기자

보도국에서 가장 유능한 여기자로 컴퓨터에 대한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황 기자의 파트너로 활약하고 있다.

짧은 단발머리가 매력적이며 당당하고 세련된 인상의 소유자다.

【마지막 해커의 공포 공식】 그 첫 번째 이야기

인간의 공포심은 개개인의 상상력에 비례한다

 

타인의 죽음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모습에 공포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우리는 왜 그런 공포를 느끼는 것일까? 어쩌면 죽음을 당한 것이 우리 자신이었다면, 타인의 죽음을 보는

것보다는 덜 공포스러울지도 모른다. 오히려 죽음으로 인해 신체의 고통과 구속을 벗어나 영혼의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큰 비약이 될까? 참,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죽기 전의

순간이 아니라 죽고 난 다음의 기분을 말하는 것이니 오해 없길 바란다.(자신이 죽는 순간의 공포는 그 어느

공포와도 비교할 수가 없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다. 그러나 죽고 난 다음의 공포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조사를 하는 사람 자체가 살아 있으니 알 리가 없지.)

타인의 죽음을 보았을 때, 우리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느끼는 기분을 전혀 알 수가 없다. 단지 죽어 있는 시체의

끔찍한 모습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머릿속에서 스스로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된다. 죽은 사람의 모습이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우리의 상상은 더욱 끔찍한 형태로 머릿속에서 형상화된다. 바로 당신의 그 상상력이 스스로를

헤어날 수 없는 공포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결국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좀 더 큰 공포를 느끼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공포심은 개개인의 상상력에 비례한다】라는 첫 번째 공포 공식….

가만히 생각해 보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의 공포 공식】 그 두 번째 이야기

인간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인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어가기 시작한다. 평균적으로 사람이 60년을 산다는 가정 하에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 보면 525,600시간. 우리는 얼마 안 되는 그 시간을 매일 1분 1초씩 까먹으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어떤 사람들은 주어진 최소의 시간도 다 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통사고로 죽는 경우, 타인에 의해 살해당하는 경우 등….

자연의 섭리인, 그리고 신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당연한 의무인 죽음. 이처럼 지극히 당연한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무서워하는 것일까?

우리가 모르는 영혼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아니면 살아온 세상에 대한 미련과 집착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명쾌하게 해석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러나 【마지막 해커의 공포 공식 2】로 생각해 보면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인간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죽음은 오직 신만이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다. 고로 인간이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범주 안에 속하게 되고,

【마지막 해커의 공포 공식 2】에 의해 인간은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신의 영역을 넘어서 죽음에

대한 모든 것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처럼 필자가 이야기한 【마지막 해커의 공포 공식 2】는 이 글에 나오는 모든 【공포 공식】을 포괄하는,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공포에 대한 모든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반원리다. 모든 공포는 이 공식에 의해

쉽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길 바란다. 만약 이 일반원리로 해석되지 않는 공포의 상황을 당신이

알고 있다면 나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편지를 써 주길 바란다. 하지만 과연 그런 것이 있을까?

 

…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의 공포 공식】 그 세 번째 이야기

공포는 인간에게 또 다른 종류의 쾌감을 준다

 

잠을 자다가 가위에 눌려본 경험이 있는가? 자신의 몸 어느 것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당하는 그 끔찍한

공포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가위에 눌리면 우리는 자신의 몸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은 제어할 수 없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마지막 해커의 공포 공식 2】 참고) 그래서 우리는 가위에 눌리면 공포를 느낀다. 상습적으로

가위에 자주 눌리는 사람들은 잠자기가 괴로울 정도일 것이다. 필자는 그들을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하려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무슨 헛소리야?”

반감부터 가질 생각 말고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잘 듣길 바란다. 가위에 눌리면 숨 막히는 공포에 고통스러워진다.

하지만 이것을 아는가? 공포감 역시 인간이 느끼는 또 다른 종류의 쾌감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들은 공포영화를

보거나 공포소설을 읽으며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결국은 끝까지 보면서 그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또 하나의 아이러니….

이제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이처럼 공포감이 우리에게 또 다른 종류의 쾌감을 가져다준다면 그 공포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쾌감의 정도도

커진다는 말이 된다. 신체의 직접적인 손상이 없이 이 세상에서 가위보다 더 커다란 공포를 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없다. 이 말은 곧 가위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공포물이라는 말이다.

공포영화나 공포소설을 즐기는 것처럼 가위의 공포도 즐겨 보아라. 그보다 무서운 공포영화나 공포소설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즐겨라. 가위의 공포를….

가위는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공포물이다.

 

… 마지막 해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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